대중문화의 마지막 뒤안 길 - 아메리칸 스플렌더

Hallo, Kino! 2008/03/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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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0년대 고귀한 안식일을 깨뜨려 가면서 까지 신문을 발간하고자 했던 신문사들은 큰 고민에 빠진다. 다들 교회에 가기 바쁜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신문으로 돌릴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의 끝에 만화라는 매체가 이용되기 시작한다. 우매한 대중들을 끌어들이는데 당시 만화만큼 유희적인 장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대중만화의 역사는 20세기를 건너 21세기에도 생존하기 이르렀고, 오늘날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탄생 배경 때문인지 만화는 단순한 오락만을 위한 장르로 치부되곤 한다. 이러한 의견에 사람들이 크게 반박하지 않는 이유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만화의 대부분이 유희를 위한 것이고, 몇몇 만화들이 학습이나 예술의 영역에 발을 담그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그 수준은 미비한 실정이다. 대다수의 만화들이 오락의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어 가고 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고, 만화도 이러한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오락의 목적을 지닌 만화를 원하기에 그러한 만화가 게속 생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20세기가 뉘엇뉘엇 넘어갈 즈음 만화는 큰 위기에 닥치게 된다. 그동안 TV, 영화 등 새로운 대중문화의 등장 때마다 만화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잃을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슬기롭게 그들과 연계를 통해 오히려 파급력을 높히기도 했다. TV 만화의 등장,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출연은 단순히 TV와 영화 장르가 뛰어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들 장르의 등장에는 만화가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장르는 TV와 영화의 파급력에 만화의 장점을 엮어만든 그럴싸한 하이브리드적인 대중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각설하고 20세기의 끄트머리에 만화는 다시금 또 다른 위험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파급력을 자랑하는 매체들이었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오래전에 고사 위험을 맞았던 인쇄매체들은 더욱 더 큰 곤란에 빠졌고, 기세 등등했던 TV와 영화도 이들, 즉 새로운 매체군과의 연계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만화는 그다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예전에 TV 만화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자연스레 이끌어냈던 것 처럼, 이번에도 웹툰으로 대표되는 또 다른 하이브리드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데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기타 장르들에 비하면 퍽 빠르고 성공적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만화는 과연 기생 장르일까? 타 장르 혹은 매체를 숙주삼아 그들의 양분을 빨아먹으며 생존하는 그러한 장르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영화의 등장으로 소설이 쇠퇴할 때 그들은 예술의 칼을 빼어들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TV의 등장으로 정상의 자리가 위협 받게 되자 그들도 역시 예술의 칼을 빼어들었다. 자신들은 단순한 오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장르가 아닌 예술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소설은 문학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고, 영화는 예술영화란 또 다른 물꼬를 트게 됐다. 이러한 추세는 비단 다른 장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만화에도 예술의 칼을 뽑아들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만화의 예술화 시도는 이미 하비 피카에 의해 시도되었다. '아메리칸 스플렌더 (미국의 광채)'라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아메리칸 센스의 코믹북은 일약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그 동안 재밌고 유쾌했던 천편일륜적인 만화의 틀을 벗어난 그의 작품은 다분히 예술지향적이다. 시니컬하고 어두운 그의 만화 세계는 단순히 고담시티와 같지 않다. 그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고담시티가 아니라 클리블랜드이며, 피카와 같이 호흡하고 생활하는 진짜 사람들이 나온다. 이를 피카식 대로 연출하고 표현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흥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피카의 만화를 보았고, 또 즐거워했다. 대중들이 즐거워 할 요소는 그다지 많이 담고 있지 않은 그의 작품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만화는 단순한 오락물이다 라는 의견의 반증이 될 수 있고, 만화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한 피카의 업적을 칭송하는 'American Splender'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전기영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는 일종의 찬양물이고 업적을 기리는 기념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나폴레옹을 위해 영웅교향곡을 작곡했던 베토벤과 같은 마음으로 필름을 돌렸을지 누가 아는가? 이러한 필자의 오버스런(?) 생각에 동조하는 이가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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