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입소합니다. 3월 17일 - 4월 11일 일정입니다. 그 후부터는 뭐 잘 모르겠습니다. 훈련소에서 가르쳐준다고 하네요. 충남 괴산에서 훈련 받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근무할 것 같습니다. 땡보직 현역보다는 힘들다는 지하철 공익이라니 마음에 안 들긴 합니다만. 그래도 공익이 되서 이런 말 하면 배부른 소리죠. 열심히 하렵니다. 퇴소한 후 뵙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필자는 한국인이기에, 한국인의 시점으로 보면 제 3세계는 미국, 영국, 일본 그리고 한국을 제외한 타국을 가리킨다. 쿠바음악이야 물론 우리들에게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에 한줄기 빛을 제공한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혼동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해두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실제로 있었던 사교 클럽에 밴드 이름이다.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음악영화이다. 매우 스타일리쉬하고, 미장센이 듬뿍 들어있을 것 같지만, 사실 무척 지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인터뷰와 짧게 짧게 끊어지는 100분간의 영상을 보고나면, 어느 새 쿠바음악에 젖어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그들의 앨범이 발매 되 12만장 이상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제 3세계 앨범이 이렇게 많이 팔린 적은 없다. 생각해보라, 만약 팔라우에서 이상한 악기를 연주하는 맹인 부부가 앨범을 냈다면 누가 라이센스를 얻어 팔려고 하겠는가? 미국과 유럽에서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인기는 결국 한국에 까지 미치게 되어 이러한 판매고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의 음악은 한 마디로 '되는 장사'였고, 이를 놓칠 음반계가 아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연이은 영화의 개봉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게 만들었다. 영화 외적인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앞서 언급했지만 영화는 정말 지루하다. 하지만 기나긴 100분을 스크린 앞에 앉아있게 만드는 힘은 순전히 음악에 있다. 절대로 빔 선더스가 영화를 잘 만든 건 아니다. 사실 루벤의 피아노 연주가 없었더라면 난 지금쯤 구입한 DVD를 집어 던졌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음악을 위한, 아니 그들을 위한 이 다큐멘터리는 100분간 짧게짧게 그들의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간다. 이는 마치 헌정과 같다. 한 때는 쿠바의 유명한 음악인들이었지만 카스트로 정권으로 인한 일자리 박탈, 그리고 그렇게 10여년 동안 잊혀지고, 자본주의 세력에 의한 그들의 재발견. 이는 쿠바음악의 상업화의 신호탄이이자, 10여년 동안 음지에서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했던 그들에 대한 보답이자 스스로 내리는 헌정인 것이다. 결국 영화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맴버들이 뉴욕 카네디 홀에서 공연하며, "뉴욕은 정말 멋진 도시군!" 이라고 외치며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끝난다. 모로스이크리스띠아노스에 코카콜라를 부어 마신 것 같은 이질감과 쿠바음악의 걸죽함이 한 데 어우러져 묘한 기분을 만들어내는 엔딩이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그들은 끊임없는 박수를 받는다. 이는 황혼에 접어들어 죽음을 앞둔 그들의 인생의 마지막 보답인 것일까? 확실히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 비단 그 것이 스크린 속에서만 인 것이어도 말이다. (*)
근 십여 년 간 사형집행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최근 들어 두 차례나 사형이 집행됐다. 연쇄 살인마 유영철도 아니고, 탈옥수 신창원도 아니다. 누구냐고? 오광록과 강동원이다. 외국 서적에게 점령 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글판에, 그리고 눈물 콧물 다 짜내고 싶은 관객과 이나영, 강동원 팬들에게 헌사하기 위해 그 둘을 과감히 교수형 시켜버린 것이다. 신파극도 이런 신파극이 없는데, 이유인 즉 감성에 지나치게 호소하기 때문이다. 본 작품이 공지영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 한 것이 이유라면 이유인데, 이는 그다지 흠이 되지 않는다. 제작자나 감독 모두 이러한 눈물 찔찔 짜는 감동을 원했을 테니까. 이러한 플롯은 예전에도 많이 있었다. 반항적인 주인공, 혹은 인물.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관객이 그에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그는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게 된다. 이로 인해 보이는 행복한 상황들. 이것도 잠시 마음의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나쁜 사건들. 이러한 이야기 구성은 일제시대 이광수, 김동인과 같은 현대문학의 시조라 일컫어 지는 사람들에 의해 모두 끝난지 오래다. 즉 식상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이는 어찌보면 캐릭터의 승리다. 강동원이라는 꽃미남 배우, 그리고 억울한 형벌, 안타까운 죽음. 이러한 풀롯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캐릭터가 이에 이입되지 못한다면 눈물은 볼 수 없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건 이러한 캐릭터의 형성은 어느 정도 짜임새가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는 재담꾼 공지영의 원작에서 그대로 답습해 온 것이다. 빌어먹게도 이 영화는 어디 하나 창조적인 부분이 없다. 그러기에 더욱 탄탄해지긴 했지만. 이나영과 강동원이 왕따시만한 얼굴이 박혀있는 포스터를 볼 때부터 영화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본 후의 감상도 별 반 다를 바 없으니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난한. 화면도 예쁘지도 않지만 못나지도 않은 음악도 좋지는 않지만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 스토리도 식상하지만 눈물이 나는 무난한 양상을 띄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공지영의 원작의 힘은 정말 컸다. 특히 이나영은 이 작품으로 돈을 벌었으면 조금 더 위험한 작품에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 우행시와 같은 안전빵 영화를 찍었으니, 이제 도전의 시기가 되지 않았나? 다음 작품에서는 예쁜 얼굴 만큼이나 잘 다듬어진 연기력을 바탕으로 좀 더 멋진 작품에서 보기를 원한다. 물론 다음 작품이 우행시2라도 상관은 없다. 이번처럼 무난만 하다면 이는 실패라고 기록되지는 않을테니까. 당신은 영화배우이지 CF모델이 아니지 않는가? (*)
문학에서 가장 어려운 장르 중 하나는 꽁트다. 사람 웃기는 건 정말 어렵다. 물론 이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 웃기는 것 만큼 쉬운 것이 어딨어?'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 웃기는 건 사람을 감동 시키는 것보다 두 어배, 아니 몇 십배는 더 어렵다. 사실 마음 먹고 야하고 저질스러운 화장실 유머 몇 개를 곁들이면 사람은 쉽사리 웃는다. 하지만 이러한 웃음은 일시적이다. 즉 휘발성이 강하다. 볼 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은 화장실 마냥 찝찝한 마음만 남는다. 조금 더 깔끔하게 웃고 싶은 사람들은 유머의 고급화를 지향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르러 문학과 연극에서는 꽁트, 그리고 영화에서는 코미디라는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영화 속 코미디란 장르에서 저질스러운 화장실 개그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가 대다수에 속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여기서 획기적인 제안을 하나 할까 한다. 바로 코미디는 꽁트의 하위 장르라고 말이다. 물론 이에 반할 사람들이 많다 생각한다. 어떻게 코미디가 꽁트의 하위 장르냐며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를 두지 않으면 앞으로의 이야기, 그리고 앞서 했던 이야기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속는 셈 치고 코미디는 꽁트의 하위 장르라 생각하여 보자. 코미디가 꽁트의 하위 장르라면 문학과 연극에서의 유머스런 이야기, 즉 꽁트가 존재하는 반면에 영화는 그렇지 못하는 게 된다. 한 단계 낮은 코미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문학이나 연극보다 수준이 낮은 장르가 되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 아직 영화는 문학과 연극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예술성에서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스스로 예술성을 갖지 않기를 원한다는 걸 알고 있는가? 영화는 예술성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언제까지나 코미디로 남고 싶어 한다. 왜 더 진화된 장르인 꽁트가 되는 것을 망설이는 것일까? 왜 한낱 킬링타임 장르로 전락하려 하는 것인가? 이는 영화가 제작될 시 필수적인 자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학이나 연극도 어느 정도 자본이 필요 하지만 영화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영화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여된다. 물론 저예산 영화도 많이 있지만, 문학과 연극이 만들어지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굉장히 비싼 편이다. 영화는 탄생을 하기 위해선 자본이라는 개념을 꼭 탑재해야 하기 때문에, 상업성을 지닌다. 이는 영화로 하여금 공존하기 어려운 예술성이란 개념을 잠시 구석에 쳐박아두게 한다. 물론 예술성을 지닌 영화도 있다. 하지만 대게 예술성과 상업성은 공존하기 힘들다. 괴물이 예술성과 상업성을 적절히 섞어놓은 수작이라고? 괴물은 철저한 상업영화다. 그렇다면 문학은 상업성이 거세되어 있냐고? 물론 문학도 상업성이 있다. 그 와중엔 짙게 깔린 작품 또한 많다. 그렇다면 문학 또한 상업성을 지녔는데 왜 문학은 꽁트를 지니고 있고, 영화는 코미디를 지녔을까? 이는 영화가 가지는 파괴력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영화보는 사람에 비해 책 읽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때는 문학은 매우 대중적인 장르였다. 하지만 이를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쟁취함으로서 문학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닌 예술적인 장르가 되어버린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한 특화를 펼치게 된다. 그 특화란 상업성을 줄이고 예술성을 극대화 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와중에 아작까지 상업성이 짙게 깔린 소설은 이러한 특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거나 아니면 역으로 출판 시장을 파고드는 작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즉, 영화는 문학을 밀어내고 새로운 대중적인 장르가 되었기에 상업성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제작에 자본이 많이 투입되는 이유도 있지만. 하지만 <사이드웨이>는 영화가 코미디에서 꽁트로 넘어갈 수 있다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성과를 제시해주었다. <사이드웨이>의 유머는 매우 심플하며 깊이가 있고, 날카로우며 부드럽다. 이는 갖가지 와인의 맛을 느끼는 것 같다. 알렉산더 페인은 필름을 이용한 꽁트를 만들어 냈다. 이는 전작 <일렉션>과 <어바웃 슈미츠>에서 어느 정도 인정된 부분이지만, <사이드웨이>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더욱 발전되었다. 영화도 꽁트가 될 수 있다. 이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화를 찍고 돈을 벌어들이는 영화 제작자들에겐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인간의 삶이란건 수많은 변수들의 집합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게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인지 인간들은 여러 재밌는 행위를 한다. 알 수없는 미래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일부를 걸고 내기를 한다던가, 누구도 지닐 수 없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녔다는 이에게 돈을 쥐어주며 미래를 묻기도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이들은 카드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카드가 바로 타로다. 타로도 카드 점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원리는 운에서 시작할 것이다. 타로의 역사적 배경과 그 밖의 것들은 필자가 문외한이기에 접어두도록 하자. 어찌되었든 삶은 앞서 언급했듯 수많은 변수들의 집합이다. 예측하긴 힘들어도 정해진 규격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측이 가능한 변수를 알기 위해 우린 운의 조합인 타로카드 점을 본다. 변수는 어찌보면 수많은 보기가 달린 객관식 문제다. 물론 이는 풀기 어렵다. 수많은 조합들이 생성될테니까. 대게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결정을 내리지만 이가 어려울 때는 운으로 구성된 주사위를 던진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예측 가능한 변수의 값을 얻기 위해 운의 힘을 빌리는 아이러니, 하지만 이 또한 본래 변수에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삶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매치포인트>에서 스칼렛 요한슨과 같이 작업을 했지만, 스크린에 함께 설 수 없어 아쉬움을 토로했던 우디 알렌은 런던을 떠나기 전 그녀와 작품을 찍는다. <매치포인트>때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우디 알렌은 극작가로서 제 2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전작들을 보면 뉴욕에 사는 지식인층의 독설과 이를 아우르는 간단한 네러티브로 구성되어있다면 런던에 건너와 찍은 작품들은 다소 다르다. 독설보단 수다를 영화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네러티브가 아닌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 결정체로서의 네러티브를 구사하고 있다. <스쿠프>는 앞서 언급했던 이러한 삶의 변수와 아이러니에 대해 즐겁게 짜맞추는 작품이다. 어디 우디 알렌 작품 중에 이렇게 많은 복선을 깔았던 작품이 있었나? 그는 하나의 완성된 네러티브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실을 맺었다. 우디 알렌이 뉴욕을 떠나온 것도 기적이었지만, 이렇듯 새로운 극작가로 변신은 더욱 더 놀랄 일이다. 그는 런던에서 3편의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앞으로 한 편 더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우디 알렌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 그지 없어진다. 그가 어떠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매치포인트>와 <스쿠프>를 잇는 '그 답지 않은' 작품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과연 이것은 예측 가능한 변수인가? 보기가 너무 많다면 운이라는 주사위를 던져 아이러니로 풀어보자. (*)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들은 임기가 끝나면 서울 어딘가에 은거하면서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곤 했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렇지 않았다. 임기가 끝나자 바로 낙향했고, 매일 몇 백명씩 찾아오는 인파에 손수 인사를 나오기도 한다. 저 사진을 보라. 참‥ 훈훈하다 못해 귀엽다. 저 분이 전직 대통령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누가 임기가 끝나면 비싼 서울 땅 냅두고 낙향을 했으며,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었나? 물론 법정에선 자주 나타났었지. 어찌되었든 노무현 지지자는 아니지만 임기 중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이런 모습은 보기 좋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권력자가 으레 지니던 체면을 부숴버린 것, 그리고 대통령이란 감투를 벗자마자 서민들과 똑같은 위치에 선 그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앞으로 미국의 엘 고어와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은 사람 같다.
Ind Hoosiers2008/03/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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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최근 3연패를 당했습니다. 붙는 경기마다 다 지네요. 시즌 초반에는 오브라이언 감독 선임과 선수들의 절치부동한 모습에 그래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나 하는 믿음이 잠깐 있기도 했는데, 여지없더군요. 지난 시즌 막판에 13연패였나 14연패였나 여튼 내리 지기만 하던게 생각납니다. 그래서 밀러옹 은퇴 이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 좌절이라는 시련도 겪기도 했죠. (게다가 이런저런 뻘짓 트래이드는 잔해로 드래프트 픽을 남발해 픽도 없었죠.) 여우 같은 버드옹 성격상 획기적인 로스터 변화는 없었고, (골스와의 4:4 트래이드는 획기적이라기 보다 당황스러운) 대형 FA 영입이나, 신인 발굴도 없었습니다. 그저 시즌 초반 샐러리캡에 영향을 주지 않는 연봉 1M 이하의 선수들과 몇몇 계약을 맺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현재 인디애나 동부 8-9위 정도 될려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내리 지고 있는 팀이 8-9위라는 것도 웃깁니다만은 여튼간에 그렇습니다. 무언가 확실히 바뀌어야 할 시점이 됐습니다. 인디는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의 모습으론 팬들을 우롱하는 게임 이외에는 펼칠 수가 없습니다. 트래이드 데드라인 전이나 혹은 시즌이 끝나고 무언가 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디에서 그러한 큰 변화는 주기가 힘든게 사실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농구에는 샐러리캡 규정이 있습니다. (NBA에만 있는게 아니라 KBL에도 있더군요.) 샐러리캡이란 선수들의 연봉 총합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제도 입니다. 이는 모든 팀에 똑같이 규정되며, 어길 시에는 사치세라는 걸 내야 합니다. 즉 샐러리캡이 100만원인데 선수들의 연봉 총합이 99만원이면 사치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총합이 101만원이면 사치세를 내야 합니다. 사치세는 샐러리캡에서 초과된 선수연봉 x2로 계산합니다. 101만원이라면 2만원을 사무국에 고대로 갖다바쳐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사치세를 내려고 하는 구단은 많지 않습니다. 뉴욕이나 댈러스와 같은 빅 마켓이나 돈 무서운 줄 모르는 구단주가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팀들은 사치세를 아끼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디애나는 스포츠를 사랑하고 농구가 인기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엄밀히 지방도시이고 빅 마켓은 아닙니다. 구단주도 많은 돈을 풀지 않고요. 덕분에 인디애나는 사치세에 힘겨워하며 현재 로스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획기적인 트래이드를 시행하려 해도 사치세의 압박에서 벗어나긴 힘들죠. 여하튼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 포스트에서는 현재 페이서스의 로스터를 압박하고 있는 선수들의 연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누가 얼만큼의 연봉으로 계약을 했고 그 계약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적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샐러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 다섯 명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쓰다보니 길어져 한 번에 다 소개하는 건 무리가 있네요.
1. Jermaine O'Neal
- 올시즌 연봉 $19,710,000 (\186억) - 마지막해 연봉 $22,995,000 (\217억) - 잔여기간 2년
인디애나의 더 맨 JO 입니다. 무지막지한 연봉을 받고 있죠. 팀 연봉 총합의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1인 연봉으로 따지면 탑 5 안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샐러리죠. 포틀에서 암흑시기를 잘 버티고 인디애나에 와서 기량을 활짝 편 선수인 그는 인디애나에서 대형 장기 계약을 맺습니다. 마지막해엔 무려 22M이나 받는 초대형 계약을 맺어버린 것이죠. 계약금도 계약금이지만 계약기간도 엄청났습니다. 재계약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2년이나 더 남았죠. 당시에는 다소 많은 감이 있긴 하지만 공수 밸런스가 완벽하게 조화된 '빅맨'이었기에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사정이 다르죠. 수많은 트래이드 루머에 그의 이름은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고, 이런저런 부상 덕분에 경기에 뛴 날만큼 벤치에서 앉아 있는 날이 많았죠. 게다가 이번 시즌 중반 또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 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아무리 공수 밸런스가 좋고 리그에서 희귀한 빅맨이라고 해도 경기에 뛰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게다가 JO는 연봉도 무지막지하게 많습니다. 그와의 계약 때문에 다른 선수 계약에 힘이 듭니다. 이래저래 JO는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죠. 물론 계약기간은 2년으로 줄긴 했지만 그의 연봉 때문에 트래이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와 1:1로 트래이드를 할 수 있는 상대는 가넷, 샤크, 마버리, 키드, 코비와 같은 슈퍼스타 정도 밖에 없지요. 게다가 JO를 데려가고자 하는 팀은 그를 팀의 2옵션으로 사용하기 위함인데 그러기엔 그의 연봉이 너무 많습니다. 슈퍼스타 A의 연봉이 대략 15M이라고 쳐도 JO의 연봉까지 하면 40M 가까이 되죠. 샐러리 유동성이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이번 시즌에도 그는 수많은 트래이딩 블럭이 올랐습니다. LA 레이커스나 뉴져지 넷츠가 대표적인 팀이었죠. 현재 레이커스는 스페인 특급 파우 가솔을 얻었으니 더이상 JO에게 관심을 보일 것 같지는 않고요. 그나마 뉴져지가 끊임없이 구애하고 있긴 합니다만 트래이드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서서 JO가 계륵과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비단 실력 비례 연봉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인디애나의 단장이 누굽니까? 여우 같은 래리 버드 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쥔 카드보다 더 좋은 카드를 얻고자 부단하게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JO를 보내고 그와 맞먹거나 그 보다 좋은 패를 얻기 위해 언제나 거절 또 거절을 했습니다. 인디애나가 받은 무수한 오퍼를 그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죠. 물론 당시에는 그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지금도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20대이긴 하지만 JO도 나이를 먹고 있고, 그의 루머가 계속하여 나올 수록, 그리고 그의 승리에 대한 불만이 계속하여 쌓여 갈수록 트래이드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되겠지요. 어쩌면 어느 날 그가 파우 가솔 트래이드 처럼 어처구니 없는 조건으로 다른 팀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