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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예찬론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Hallo, Kino! 2008/03/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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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쾌락이 있다. 성관계를 가질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 같은 원초적인 쾌락도 있고, 예술작품을 보고 느낄 때나 인간관계 사이에서 깊은 즐거움을 느낄 때와 같은 쾌락도 있다. 모름지기 인간이란 쾌락에 충실하여 다른 종족보다 몇 배나 많은 쾌락들을 만들고 즐겨왔다. 쾌락의 한도에 다다른 인간들은 드디어 새로운 영역까지 손을 뻗치게 되는데 이는 바로 외로움의 영역이다.
  외로움은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동물들도 외로움을 느끼고, 심지어 식물들도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생명체가 지닐 수 있는 의무이자 권리와 같다. 이는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기에 인간도 외로워 한다. 인간은 다른 종족들과는 다르게 외로움을 더욱 자주 느끼고 깊이 느낀다. 다른 종족들이 외로움을 해결 할 상대방이나 기타 대상을 찾게 되면 쉽게 해소하는 반면에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친구와 이성친구가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하루 이틀 외로워 하는 것이 아닌 인생내내 외로워하기도 한다. 어찌보면 인간은 외로움에 특화된 종족인 것 같다. 외로움을 인생 내내 달고 사니 그럴 법 하다. 그다지 유쾌한 감정이라고 할 수 없는 외로움을 달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잡고 눈물도 짓게 만드는 외로움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다윈의 말대로 라면 이러한 감정은 즉시 인간의 유전자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종족들에 비해 발전된 형태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인간은 외로움의 발전의 방향을 쾌락으로 잡았다. 인간은 쾌락이 있기에 살아간다. 주요 쾌락 중 하나인 성욕 때문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고 프로이트가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외로움을 쾌락의 범주에 포함시키며 이를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만들어버린다. 쉽사리 떼어버릴 수 없는 외로움을 버리지 않고도 이를 극복해내는 나름의 방편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렇게 진화해 온 인간은 지금 외로움을 영유하고 있다. 외로움을 가짐으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즐거움을 알 수 있고,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더욱 자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삶의 반작용과 같은 존재다. 애틋하고 미어지는 외로움이 있기에 인간은 다른 종족들이 느낄 수 없는 고도의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박에 소금을 뿌리면 더 단맛이 나듯이 외로움은 인간의 삶의 단맛을 내기 위한 약간 짠맛일 뿐이다.
  그들은 이러한 외로움의 법칙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언제나 외로움을 느낀다. 어찌보면 도쿄는 외로움을 느끼기 위해 설치된 세트 같다. 2시간에 이르는 상영 시간 내내 외로움이 꾹꾹 눌러담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외로움의 엑기스이자 농축액이다. 소피아 코폴라는 자신이 겪었던 외로움의 감정을 관객과 같이 호흡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외로움이란 결코 슬프기만 한 감정이 아닌 또 다른 즐거움을 창조해내는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이니까. 그렇기에 이국에서의 그들의 넘칠 듯 넘치지 않는 외로움의 감정이 더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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