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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에 익숙해지기 - 이장과 군수

Hallo, Kino! 2008/03/0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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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에서 예술영화 찍으려면 리얼리즘 이어야 한다.’ 라는 말. 얼마 전까지는 통용되던 말이다. 예부터 예술영화만 찍었다는 유현목 감독의 대표작이 <오발탄>인 것과 현시대 가장 확고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김기덕의 작품들이 대다수가 리얼리즘 작품이라는 것을 볼 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 많이 옅어진 상태다. 이름 하여 ‘천재 감독’이라고 불리는 박찬욱, 홍상수 등의 등장이 그 이유다. ‘리얼리즘을 하지 않아도 예술영화일 수 있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잡을 수도 있다.’ 라는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경향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리얼리즘을 갈구하고, 또 생산해낸다. 이는 한국 현대사 자체가 리얼리즘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리얼리즘 중에 정치 문제를 그럴싸하게 다룬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그런지 정치 문제를 다룬 영화엔 늘 의견이 많다. 정치 문제를 다룬 영화가 개봉되면 뜨거운 감자로 누리꾼, 평론가들의 식탁에 오르기 일쑤다. 식탁에 오르기만 하면 다행이다. 그들은 항상 편식만 한다. 그들의 미각은 맛이 있다, 맛이 없다 두 가지 체크 박스만 존재할 뿐이다. 어떠한 정치 성향을 지녔던 간에 우리는 언제나 객관식 답만을 생각해내려 한다.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은 이러한 갈등의 정점에 섰던 작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지 근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한 쪽에서는 한강의 기적, 한 쪽에서는 독재정권 박통이라며 으르렁 거린다. 피격 사건의 상황만 두고 벌인 고급스런 블랙코미디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어떠한 정치적인 견해와 특정 정당에 대한 호감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이 작품은 두들겨 맞았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앞니가 송두리째 나가, 검은 화면에 무미건조하게 뜬 자막만 봐야했으니 말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서 장규성 감독은 조금은 위험스런 영화를 내보인다. <이장과 군수>는 노골적인 ‘노빠’ 영화다. 극중 유해진 역은 누가보아도 노무현 대통령이다. 기호 2번의 파란색 정당을 누르고 당선되고,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될꺼야’라는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준 감독의 의도는 누가 보아도 뻔하다. 소위 ‘국책홍보영화’ 라고 비이냥 대는 시선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영화는 노무현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고 청렴하고 올바른 사람의 실패를 그려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너무 노골적인 묘사했다는 것에 있다. 파란색 정당의 기호 2번은 누가 보아도 2007년 현재 제 1 야당이고, 그들이 벌이는 짓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탐관오리의 교과서와 같은 행동들이다. 게다가 운동권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아무것도 모르고 배후의 조직에 휘둘리는 소위 치 같은 행동들만 일삼는다. 이러한 묘사를 보고 특정 정당과 운동권을 옹호하는 집단에서 좋은 소리가 나왔을 리 없다. 게다가 송능한 감독과 같이 코믹스럽지만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 시각도 담지 못한 터라 영화적 완성도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여러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도 자신 있게 개봉을 하고, 그리고 감독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을 옹호한다는 발언을 한 것은 무엇일까?
  황승현 영화평론가는 ‘정부시책을 온몸을 던져 홍보하려는 열의는 가상하지만, 감독의 정치적 편견을 코미디 장르를 통해 관객의 무의식 안으로 밀반입시키려는 태도가 과연 윤리적인 것일까’ 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관객의 무의식 안으로 밀반입시키려는 태도’ 일 것이다. 분명 이러한 밀반입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감독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fact 또한 함께 담고 있다. 영화는 관객들의 무의식 속에 파란색 정당의 대한 혐오감과 불신을 심지만은 않는다. 그 전에 앞서 이러한 내용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음을 각인시켜주고 이를 이해하게 해준다. 이가 전제되어야만 앞서 언급하였던 정치적 편견의 밀반입이 가능한 것이다. 관객들은 예전보다 지능적으로 변모했다.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필터를 거쳐 생각한다. 많은 수의 관객들이 이러한 자신들만의 필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객들을 향해 장규성 감독은 자신의 정치적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작품을 들이밀었던 것이고, 이를 관객들은 자신들만의 필터를 걸쳐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필터를 가진 관객보다 가지지 못한 관객이 더 많다. 그리고 앞서 언급하였던 정치적 편견의 밀반입에 그대로 노출되는 관객 또한 많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러한 현실이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주고 이를 그들 머릿속에 각인시켰다는 것 자체에 이 영화의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는가 싶다. 더 이상 정치영화를 가지고 정치적 견해를 왈가왈부 펴는 소모적 논쟁은 지겹지 않은가? 삐딱한 시선이 지식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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